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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의 말씀

인생의 광야길에서(누가복음 3장 21~22절)

by 일하는 목사 2024. 1. 28.

https://youtu.be/8MXBbZAVr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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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복음 3장은 특별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부르심과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3장이 바로 부르심과 사명에 대한말씀입니다. 누가복음 3장이 가지는 두 번째 특별한 점은 요단강에서 침례를 준 침례요한과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의 바통터치가 일어나는 내용이 있습니다. 요한의 사역은 마무리되고 예수님의 사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내용입니다그러한 측면에서 21절과 22절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위대한 영적지도자인 요한의 사역을 총정리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성경 속에서 사역의 첫발을 내딛는 시발점이라는 거에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성경내용을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부르십니다. 오늘 본문의 장소적인 배경은 광야입니다. 흔히들 우리의 인생을 광야라고 표현합니다. 광야와 같은 우리의 인생길에서. 사막과 같이 메마른 우리의 인생길. 힘들고 지쳐도 기대고 쉴 곳 없는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그래서 어떤 가수는 이렇게 노래하죠?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고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wVky_xCgX4

매일 매일 발걸음을 어디로 떼어야할지 모를 때도 많고... 이것이 옳은지? 저것이 옳은지 갈등하며 혼란 가운데 지낼 때도 무척이나 많습니다광야 같은 인생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으실까요 하나님은 광야에서 부르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침례요한과 예수님 두 분 다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셧습니다.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늙어 임신할 수 없는 엘리사밧을 통해 침례요한이 태어나게 하셨고, 처녀인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뜻하신 바가 있기 때문에 요한도 보내시고 예수님도 보내셨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있어서 태어난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하신바가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 원한다면 우리는 광야같은 인생길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침례요한은 광에서 무엇을 했는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눅3:2)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본문에서 빈들이라고 되어있는데 이 단어가 광야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침례요한을 찾아가시고,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침례요한이 고독하고 외로운 광야에 잠시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만나주셨을까요? 아닙니다. 함께 누가복음 180절을 읽겠습니다.

(눅1:80)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침례요한은 빈들에서 자랐습니다. 광야에서 자랐습니다. 그곳에서 자라면서 외로움을 고독을 견뎠습니다. 고통과 혼란도 견뎠습니다. 두려움도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요한이 외로울 때 만나주시고 고독할 때 만나주시고 두려울 때 만나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요한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침례요한만 부르신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예수님을 부르십니다.

 (눅3:22)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우리는 쉽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서 언제든지 하나님과 깊은 교통함 가운데 있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필요 없으실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많은 신학적인 논쟁이 있는 본문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는 자기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고 자신의 역할을 알게 된 첫 장면이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신학자들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든, 저든 상관없이 우리는 동일한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나님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고 있다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요한을 부르신 것처럼,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의 광야에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도 부르십니다.

 둘째, 광야에서 하나님 앞에 결단했습니다하나님께서 요한을 부르셨을 때,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부르셨습니다그 목적이 눅 3:4절입니다

3: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나님께서 요한을 부르셨을 때 하나님의 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계의 침례"입니다. 침례요한은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앞에 순종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도록 회개의 침례를 줍니다. 성도 여러분 회개케 하는 침례를 주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요? 단순히 침례만 주는 행위는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케 하는 침례를 주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회개케 한다는 말은 상대의 죄에 대해 드러내야 합니다. 상대반의 죄를 들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이 회개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요한이 어떻게 죽었는가요? 요한이 헤롯의 죄를 공개적으로 드러냅니다. 그 때문에 결국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곧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순종하기로 결단하는 것에는 때로는 크고 작은 고난이 뒤따르게 됩니다. 순종은 고난이 따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 또한 사명을 감당하기로 결단하고 그 사명의 길을 걷다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요한이나 예수님의 결단, 순종의 결단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악한 마귀 사탄은 사탄이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걷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세가지 유혹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기로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희생과 손해가 있어도 견디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랬더니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한번 볼까요?

 

셋째, 광야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습니다예수께서는 광야에서 어떤 일을 경험하고 있는지 4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4: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마귀는 예수님을 넘어트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조차도 시험한다면 과연 우리는 얼마나 더 시험하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은 이 시험을 통과한 이후 본격적인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시험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이기도록 도와주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이 우리를 시험에서 이기도록 하십니다.

(마무리)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른 모양으로 고난을 겪습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이 있어서 그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명확한 이유를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난을 극복하고 나면 우리 또한 욥의 고백처럼 정금과 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유혹과 고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합니다.

(기도)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은 광야와 같습니다. 사막과 같습니다. 깊은 수령 가운데 있기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광야에서,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사명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므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능히 모든 시험을 이기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인생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