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24장 13-35절
제목 : 회복의 길
우리는 낙심과 힘
든 일이 생기면... 감정적으로 행동하거나, 자기 생각에 몰입되어 잘못된 판단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릇된 판단이 아니라 지혜롭고 유익한 판단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제자들도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잘못된 판단을 하고 고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예수님은 어떤 일을 행하실지 오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회복은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으로는 회복을 갈망하면서... 실제 그들의 모습을 보면... 혼자 있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나 회복은 혼자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이 되기 바로 직전인 금요일 오후 3시쯤 되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공회의원이었던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장사 지내집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주일 아침 일찍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갑니다. 그런데 그들은 너무나 놀랍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때 천사가 나타나 ‘예수께서 살아나셨다고. 예수께서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고’ 여자들에게 말합니다. 여자들은 이 기쁜 소식을 들고 제자들이 모인 곳에 달려가 전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여자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어요. 그러나 한 제자 베드로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무덤에 달려가고 살아계신 예수님은 만나지 못하지만 여자들의 말처럼 예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확인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일이 있은 당일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허탈한 마음을 품고 자기들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여자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고 하지만 이 두 제자는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죽은 사람이 살아날 것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도 살리시고 백부장의 딸도 살리셨지만 그 예수께서 죽으셨으니 이제 누가 살린단 말입니까? 그들은 너무나 허탈해서,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이제 두 제자는 고향인 엠마오로 갑니다. 그런데 그 가는 길에 누군가가 동행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15절에서는 동행하는 분이 “예수”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억해야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실제 예수님은 그들과 동행하셨지만, 이 두 제자는 그 동행하는 존재가 예수님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그렇잖아요. 우리가 너무나 낙심하고 너무나 절망하고 있을 때 우리 속에 성령께서 계신 것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것을 우리도 깨닫지 못할 때가 얼마나 자주 있습니까? 이성과 지식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두 제자에게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묻습니다. 그러자 둘 중 한 사람인 글로바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예루살렘에서 최근에 일어난 일을 모릅니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인데, 이 선지자를 대제사장과 관원들이 그를 십자가에 죽이고 말았다고 낙심하여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줄 분이라고 믿었지만 그것은 너무 큰 기대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분은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의 말은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낙심한 제자들은 자신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예수님께 “자신들과 함께 오늘 있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제자들의 부탁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시면서 특별한 한 가지를 하십니다. 30절입니다.
눅 24: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놀라운 메시지가 여기에 숨어 있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이냐는 거예요. 여러분 이 말씀 읽으면 기억나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잡히시기 전날 밤 떡과 포도주를 나눌 때의 주님의 만찬입니다.
막14:22-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사실 눅24장 30절과 마가복음 14장 22절은 거의 완벽히 동일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축사를 듣는 순간 제자들에게 기억이 난 겁니다. 여러분, 성령님께서 하시는 사역이 뭔지 아세요? 기억나게 하시는 사역... 낙심과 절망에 빠진 제자들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사역을 성령께서 하신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나게 하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너무나 놀란 제자들이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듭니다. 이때가 31절입니다.
눅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31절에 뭐가 밝아졌습니까? 그들의 눈이 밝아진 겁니다. 육신의 눈은 이전에도 뜨고 있었지만, 절망과 좌절로 가려진 영적인 눈은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사역으로 뜨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게 된 제자들은 이제 다시 살아납니다. 다시 회복됩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어떻게 합니까? 다시 예루살렘 제자들에게로 돌아갑니다. 두 제자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은 먼저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하신 일이 있습니다.
둘째, 회복은 안에서부터 변화됩니다.
32절에서 중요한 한 가
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동행하시면서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그 말씀이 기억나게 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과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 제자들에게 일어난 변화가 있습니다. 32절입니다.
눅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이 본문에서 두 가지를 보겠습니다.
먼저, ‘뜨거워졌다.’입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내면에 말씀이 충만하면 영적인 눈이 뜨이게 됩니다. 절망의 눈이 소망의 눈이 되고, 슬픔의 눈이 기쁨의 눈이 됩니다.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를 더 봐야 합니다. 뜨거워지는 것은 어디에서 시작합니까? ‘속에서’입니다. 우리가 뜨거워지는 것은 보통 밖에서 입니다.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우리는 더워집니다. 따뜻한 방 안에서 우리는 더워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모두 외부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안에서 뜨거워져야 진짜 변화가 시작됩니다. 제자들은 안에서부터 뜨거워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진정한 회복을 원한다면 우리는 안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내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내가 변화됩니다. 회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방법과 지혜로 우리는 회복을 시도할 수 있고 때론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방법으로 회복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회복은 밖에서부터 되지 않습니다. 안에서부터입니다. 마음에서부터입니다. 내면의 변화가 가장 절실할 때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정말 회복을 원한다면,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회복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이 회복은 육신의 방법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안에서부터 뜨거워져야 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우리를 회복시키는 것은 성령님의 사역이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참된 회복을 위해 성령님을 더욱 의지하며 그분에게 우리를 전적으로 의탁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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