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의 말씀

2024.12.01.주일말씀(주가 일하시네, 마 1:1~17)

일하는 목사 2024. 12. 1. 05:00

(도입)

오늘은 12월의 첫날이자 첫 주일입니다. 12월은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신 성탄절이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그 이유를 같이 나누겠습니다. 

(본론)

1. 예수님은 구약을 성취하러 오셨습니다.

마태복음의 핵심주제는 '구약의 성취'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마태복음에 가장 중요한 단어는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취'란 무슨 뜻일가요?
원어로 보면 '플레로우'라는 단어인데 이 단의 의 뜻은 '충만하다. 가득채우다. 이젠 더 채울 것이 없다.'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무엇을 성취하셨을까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동일한 문구가 마태복음에 무려 10번 사용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표현은 신약성경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지요. 오직 마태복음에만 사용되는 문구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모든 사역은  '구약을 성취하는 사역'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사건은 구약성경을 하나 하나 성취하는 사역이다. 
정리하면, 예수님은 자기 마음대로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기 하고싶은 대로 일하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오신 분인줄 믿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도 잘 나타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듭니다.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사람은 자주 변심합니다. 나하고 맞는 것 같으면 신실했다가, 조금만 자기하고 안맞거나 조금만 나를 기분나쁘게 하면 돌아서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만큼 잘 변하고 틀어지는 관계는 없습니다. 다른 말로하면, 인간은 신실하지 못하다는 거에요. 이 말은 인간은 믿을만 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반면,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삼상 15:29 이스라엘의 영광이신 하나님은 거짓말도 안 하시거니와, 뜻을 바꾸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뜻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삼상 15:29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이런 것?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 모두다 신실하신 주님의 신실한 동역자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을 성취하신 것처럼 우리를 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지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구약을 성취하기 위해, 이루시기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이 있습니다. 그 오시는 때가 언제인가입니다.

2. (구약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은 완벽한 때에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해야할 것 가운데 하나는 구조입니다. 1절과 17절은 완벽한 수미쌍관식 구조입니다.  시작하는 1절과 마치는 17절은 완전히 겹쳐지는 구조입니다. 1절의 3명과 17절의 3명이 완벽하게 겹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그 안인 2-26절도 3의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 14대요
솔로몬부터 여고냐까지 : 14대요
여고냐부터 예수까지 : 14대

14의 의미는  7곱하기2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종종 등장하는 7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을 나타낼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7곱하기 2는 바로 14입니다. 곧, '완전하고 완전한'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14가 세 번 사용됩니다. 완전하고 완전한 이 무려 세번이나 사용됩니다.  3은 또 어떤 의미가 있을가요? 이것도 완전함입니다. 따라서 14가 세번 사용되었다는 말은  '완전하고 완전한 / 완전하고 완전한 / 완전하고 완전한'입니다.

정리하면, '가장 완벽한,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완벽하고 완벽하고 완벽한 바로 그때'에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왜 요셉의 아들로 2천년 전 그때에 왔습니까? 

그때가 바로 최상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바로 가장 적절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가장 완벽한 때에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로 그때에 오신 것입니다.
그때가 하나님의 때이며 그때가 주께서 일하시는 때입니다.

찬양 가운데 '주가 일하시네'라느 찬양이 있습니다. 
날이 저물어 갈 때 빈들에서 걸을 때 그때가 하나님의 때...
내 힘으로 안될 때 빈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 이레...

때론 우리가 낙심할 때, 이때 우리가 붙잡아야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사 60:22 -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하나님은 반드시 회복시키십니다.

그런데 때가 되면 하나님이 이루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 11:14 -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우리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최상의 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때가 있듯이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있습니다.

3. 예수님은 어둠을 완벽히 깨고 오셨습니다.

14대가 세번 사용된 것에 대한 의미를 한 가지 더 살펴보겠습니다. 

14대의 세번의 구조는 다른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완벽한 이라는 의미외에 다른 의미가 있는데요. 그것은 이겁니다.

첫번째 14대는 가장 좋은 흥왕의 때 :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가장 전성기의 역사

두번째 14대는 정치적으로 최고의 전성기인 솔로몬이후부터 여고냐가 포로로 잡혀가는 가장 비참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비참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번째 14대는 포로로 잡혀가서 역사의 흔적에도 별로 나타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포로시대부터는 왕이 없는 시대가 된것이지요. 겨우 530년대와 400년대 중후반에 포로귀환을 왔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힘든 시대였고, 영적으로도 선지자가 몇몇 나타났지만 큰 기적은 없고 오히려 기원전 400년경부터는 아예 영적 암흑기로 접어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없고, 선지자도 없고, 하나님의 기적도 없는 영적인 흑암의 시대가 무려 400년간 이어집니다.

(결론)

정리하면, 14대가 가면 갈수록, 이스라엘은 더욱 더 영적으로 어둠의 길을 걸었다는 거에요.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영적인 어둠... 완벽한 어둠 가운데 이스라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대할 것도 하나 없고, 희망도 하나 없고. 오직 절망만 남아있던 바로 그 때에... 누가 나타난 겁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음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벽한 어둠을 완벽히 깨고 빛으로 오신 대사건이었습니다. 아멘 이십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빛이 되시는 겁니다. 완벽한 절망을 완벽한 소망으로 바꾸신 분이 오셨습니다. 

고통의 눈물을 기쁨의 눈물로 완벽히 회복시키는 분이 오셨습니다. 

피할 수 없는 영적 사망에 있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분이 오셨습니다. 

구약을 성취하기 위해 완벽한 때에 오셔서 모든 어둠을 완벽히 깨시고 우리에게 생명의 소망을 주신 바로 그 주님을 이번 성탄을 준비하면서 만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주가 일하시네... 찬양아시죠/